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도는 우리땅 (문단 편집) == 제작 과정 == 1980년대 초 [[KBS]] 라디오 PD이면서 동 방송사 TV의 코미디 프로그램 작가로도 일했던 박문영은 어느 날 신문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망언을 접한다. 이에 자극 받아 개그 코너에서 독도 노래를 내보내기로 김웅래 PD와 기획, 혼자서 1주일 만에 곡을 완성했고, [[정광태]]와 [[임하룡]] 등 KBS 개그맨 4명이 포졸 복장을 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처음으로 곡이 공개되었다. 이후 1982년 6월 [[대성음반]]에 의해 정식으로 LP 음반에 수록됐는데, 원래는 정광태뿐만 아니라 처음 노래했던 개그맨 4명이 함께 녹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팅 자리에 제작자인 서희덕[* 당시 [[대성음반]] 문예부장으로서 대학생을 겨냥한 음반을 기획 중이었다. 2017년 현재 [[한국음악산업협회]] 6대 회장.]이 지각을 하면서 미리 와서 기다리던 4명 중 한가하던 정광태를 제외한 3명은 스케줄 상 자리를 떴다. 뒤늦게 온 제작자는 정광태 혼자만이라도 녹음을 시키기로 결정해 정광태의 솔로곡이 되었고, 여러 가수들의 옴니버스 [[LP]] 음반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의 A면 5번 트랙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본래 이 음반은 후에 [[개똥벌레(노래)|개똥벌레]]를 부르게 되는 [[신형원]]의 데뷔곡 〈불씨〉가 타이틀 곡이었는데, 독도는 우리땅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나중에는 아예 음반명을 《독도는 우리땅》으로 바꾸고 해당 곡을 타이틀 곡으로 바꿔서 재판했다. 또 이 노래로 정광태는 1983년 [[KBS 가요대축제|KBS 가요대상]]에서 남자 신인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여자 신인 가수상은 〈[[아! 대한민국]]〉의 [[정수라]]였다.]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여러 언론 보도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인데, 그 밖에 모순되거나 보도끼리 상반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코미디 프로그램의 이름 독도는 우리땅이 최초로 수록된 음반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89298&cid=58276&categoryId=58283|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1982년 6월 30일에 발매됐으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7280020921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7-28&officeId=00020&pageNo=12&printNo=18712&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도 관련 기사들이 있어 적어도 1982년 7월 이전에는 발매된 것이 분명하다. 한편 노래와 관련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음반 발매 이전에 이 노래가 나왔던 TV 프로그램 제목을 《[[유머 1번지]]》(당시 제목은 '유모어 1번지')라고 일관되게 설명해 왔다[* 이건 80년대 초반 유머 프로그램 + 포졸복장이면 일단 변방의 북소리가 떠올라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작 유머 일번지는 음반 발매 이듬해인 1983년 4월 2일부터 방영된 프로그램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는다. '82년 말에 유머 일번지에서...' 식으로 구체적인 시기를 지목해 나오는 보도도 많으나 역시 실제 방영 시기와는 맞지 않는다. 1982년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으로는 《코미디 출동》과 《유모어 극장》, 버라이어티 성격의 《젊은이의 토요일》 정도가 있지만 이중에서 독도는 우리땅과 관련해 보도된 것이 없어 정확히 어느 프로그램인지는 알 길이 없다. 세월에 따라 기억이 변조되다 보니까 그런 것이다. * 개그맨 4명의 이름 처음 TV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노래한 개그맨 4명을 이야기할 때 [[정광태]], [[임하룡]]은 관련 보도마다 빠짐없이 이름이 등장하나, 나머지 2명은 보도에 따라 [[장두석]]과 [[이상운]], 또는 장두석과 [[김정식(코미디언)|김정식]], 아니면 이상운과 김정식으로 나올 때도 있는 등 중구난방이다. 정광태의 인터뷰들도 일관되지 않은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1963480|서울신문 인터뷰]]에서는 본인,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이라고 했지만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63085|스포츠조선 인터뷰]]에선 본인, 임하룡, 장두석, 이상훈이라 말한 것으로 나온다(이상훈이라는 오타는 다른 기사에서도 자주 보인다.). 한편 2011년 출연한 KBS 《여유만만》에서는 본인, 임하룡, 장두석, 그리고 '[[메기#s-3]] 이상운'이라고 직접 말하는 모습이 방송됐으나, 정작 방송 전에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4934368|연합뉴스]]에서 나온 홍보 기사에는 KBS에서 자료를 받아 쓴 기사일 텐데도 이상운이 아닌 김정식으로 나오며, 방송 직후의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83065|TV리포트]] 기사에서는 방송 중에 이상운의 별명인 메기가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훈으로 오타를 냈다. 1982년 당시 촬영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을 박문영(박인호)의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362922|연합뉴스 인터뷰]]에 이르러서는 정광태, 임하룡, [[심형래]], [[김학래]]라고 나오기까지 하니, 결국 그 4명 중 2명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언급된 개그맨 당사자들이 직접 밝히거나 당시 방송분이 확인돼야만 알 수 있을 판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방송자료 대다수는 테이프 재활용 등으로 소실되었다.] * 음반으로 나온 과정 가수 정광태에 따르면 노래가 TV로 처음 방송된 그날, 방송을 본 음반 제작자가 음반을 낼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02262|CNB 저널 제79호]] ] 방송 당시 이미 국민들은 일본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 때문에 분노하고 있었던 터라 제작자가 주목하고 먼저 제안했다는 것. 하지만 작사 작곡가 박문영의 설명은 다른데, 원래 해당 노래는 개그 코너를 위한 일회용에 불과했기 때문에 박문영은 녹화를 마치고 곧바로 가사를 적었던 전지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런데 정광태가 휴지통을 뒤져 가사를 옮겨 적어가더니, 나중에 대성음반에서 발매하려 했던 음반의 자투리 트랙에 노래가 실렸다는 것. 박문영은 노래에 관해 아예 잊고 있다가 녹음 이후에야 사실을 알았으며, 자신은 당시 곡을 직접 주기로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저작권의 분쟁여지가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좋아|오히려 잘했다는 투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362922|연합뉴스, 2006년 7월 20일.]]] 인터뷰 외의 다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정광태가 여러 음반사를 돌아다니며 녹음을 부탁했으나 개그맨인 점도 있고, 가사가 장난스럽다, 괴상하다며 퇴짜만 맞다가 그 노력이 가상해서 간신히 받아준 곳이 [[대성음반]] 한 군데였다고 한다.[* [[http://www.sobilife.com/news/articleView.html?idxno=797|소비라이프, 2008년 10월 8일.]]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